태그 : 나락

봄방아 찧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니 방아를 조금씩 찧기 시작합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하고 남겨 두었던 나락을 찧는 것이죠.

아침 일찍 순곡 마을로 가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 막내딸이 방아를 찧으러 왔습니다.
방아를 처음 찧어본다고 하더군요.
봄방아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쌀 80kg 10가마 정도를 찧었습니다.

방아를 거의 찧어갈 무렵 동네에서 리어카로 나락 몇 포대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방아를 찧어 놓고 순곡에 쌀을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동네 할머니 댁으로 차를 댔습니다.
길가에 있는 집인데 대문이 좁아 겨우 차가 들어가는 집입니다.
20 포대 넘게 많은 벼를 실었습니다.
방아를 찧으니 쌀 80kg  9가마 정도가 나왔습니다.
쌀을 실어다 드리고 쌀겨와 왕겨를 담았습니다.

쌀겨는 밭에 내서 고추밭 밑거름으로 쓸 생각입니다.
지난 번에 퇴비를 냈던 밭에 추가로 넣어야겠습니다.
방아를 모두 찧고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04/06 20:24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서성마을 <11>

오후에 서성마을로 갔습니다.
서성리는 큰 저수지가 있고 농로길로 5km 남짓을 가야 합니다.
이 집은 서성마을에서 유일하게 방아를 찧는 집입니다.
원래 살던 이들은 거의 떠나고 없습니다.
이제는 별장을 짓는 외지인들만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아따 오랜만이시"
"잘 계셨지라우"
"그냥 저냥 허네"
"건강하시제라?"
"괜찬허시"
"올 농사는 잘 되얐습니까?"
"생각보단 별로시"

집안에서 할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와따 또 오셨구만이라"
"예 일년만이구만요"
"쌀이 똑 떨어져부러가꼬 굶을 뻔 했는디"
"글먼 나락 있응께 도구통에 찧어 드셔야제라"
"그래서 도구통 꺼내놔부렀소"
"지가 쩌그 정미소서 봉께 도구통 있길래 얼렁 와부렀구만이라"
"허허허"

정미소에서 방아를 찧어 쌀을 싣는데 할아버지 옷에 먼지가 가득합니다.
먼지를 털어 드리며 할머니가 한 마디 합니다.
"아따 영감 먼지 좀 털어부쇼"
"기냥 나또 이따 털먼 되제"
"워메 글먼 안 데리고 가불랑께"
"하하 어르신 얼렁 터세요이"
"글먼 그래야제"

방아를 찧어 집으로 가져다 드렸습니다.
"몇 남매나 두셨당가요?"
"칠남매시"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힘드시"
"자식이 많으면 좋은 것도 있지만 그러시겠지라우"
"긍께 말이시"
"인자 힘들어서 농사도 못 짓겄네"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당가요?"
"나가 여든 하나고 저 사람은 네 살 아래시"
"연세가 많으시구만요 건강하셔야제라"
"그래야제 내년에도 얼굴 봄세"

2008년 정미소풍경 열 한 번째 이야기는 오지에 남은 홀로 남은 부모님의 자식 걱정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30 20:23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다산마을 <9>

오전에 다산 마을에서 방아를 찧으러 왔습니다.
칠십 여섯 되신 할머니와 딸이 왔습니다.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했고 농사일로 몸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함께 온 딸은 옷이 화려했고 아주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쌀겨를 담고 딸은 나락을 부었습니다.

정미소에 일손이 부족해 직접 일을 했습니다.
방아를 찧어 집으로 갔습니다.
골목길이 좁아 애마를 후진으로 들이댔지만 중간에서 멈췄습니다.
쌀을 어깨에 메고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창고에 넣어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쌀을 내리는 트럭에 기대고 있습니다.

"아따 할매 쩌리 좀 가제 계속 발에 치잉만요"
"아이고 미안허요 허리가 아퍼 짚고 있을라고 그랬는디"
"그먼 저쪽에 계셔야제 가는 곳마다 따라 댕기먼 안되제라"

"연세가 많은디 농사 그만 허셔야겄구만이라"
"안직은 갠찮은디"
"우리 막둥이 줘야씅께 해야쓴단 말이요"
"엄마는 그렇게 도와줘봐야 필요가 없어요"
"고런 말이 어디 있다냐"

"따님은 어디 산답니까?"
"미국 캘리포니아요"
"와따 먼디서 오셨구만이라"
"젊은 분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뭐 힘은 좀 들지만 좋습니다"

쌀을 모두 내리고 나서는데 딸이 음료수라도 사먹으라고 돈을 내밉니다.
이런 경험은 아주 드물죠.
극구 사양했지만 트럭에 넣어주더군요.
'이게 미국식인가?'

2008년 정미소풍경 아홉번째 이야기는 열 손가락 중 가장 아픈 한 손가락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28 22:03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마산마을 <8>

마산마을에서 점심 먹고 바로 나락을 실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일이 바빠 못가고 저녁 6시가 되어 마산마을에 들어갔습니다.

"어두와져붕께 못 온갑다허고 비니루로 다 덮어부렀는디"
"죄송허구만이라 많이 바빠부렀구만요"
"많이 기다리시먼 밥맛이 더 좋답니다"
"허허 허기사 그도 그럴듯 허구만"

할머니는 부지런히 방아 찧으러 가실 준비를 하셨습니다.
쌀집아저씨는 40개 정도 되는 나락을 애마에 실었습니다.

"건강허신게라?"
"내가 많이 아퍼부요"
"아니 어디가 아퍼붑니까?"
"무담시 배앓이를 해가꼬는"
"병원에 가보셨당가요?"
"가봤는디 큰 병원서도 이유를 잘 모릅디다"
"그래요이 빨리 나으셔야 헐텐디.."

"그먼 나락은 어떻게 담았답니까?"
"메칠 전부터 조금 나아서 아적부터 보지란히 담았구만이라"
"자식들이 걱정 많이 했겄는디요"
"이놈 저놈 모도 쫓아오고 난리가 나부렀제"
"그래도 조금 나으셨당게 좋구만이라"

"큰 딸이 지 집으로 오라고 긍만이라"
"몸이 불편헝께 그리 허시면 좋겄구만요"
"아적 가실이 안 끝나서 못 가고 있제라"
"빨리 일 끝내고 딸집에 가서 쉬세요"

방아를 찧어 집에 가져다 드리고 나오니 밤 여덟시가 넘었습니다.
연신 고맙다는 말씀과  배즙을 주셨습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 여덟 번째 이야기는 가을일 끝내고 자식집으로 쉬러가는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24 22:51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찰동마을 <7>

내일부터 비가 이틀 동안 내린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오후 들어 구름이 많아지고 바람도 일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시가 지나면서 전화가 빗발칩니다.
들에다 나락을 널었는디 좀 싣고가시요이.

다섯 군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두 시간 동안 정말 땀 뻘뻘 흘리며 나락을 실어 날랐습니다.
덕분에 정미소 여기 저기에 나락이 쌓였습니다.
정미소에 가져다 놓은 나락을 찧어야 다시 실어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덕마을을 거쳐 찰동 마을을 들렀습니다.
두 집 모두 많지 않은 양이어서 한꺼번에 싣고갈 생각입니다.
마을 입구에 40 중반을 보이는 젊은 분이 서 계십니다.

"늦었구만이라 용생리 정미소에서 왔구만요"
"여깁니다 고생이 많으시구만요"

열심히 나락을 싣고 있으니 어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낯이 익숙한 분이셨습니다.

"아니 기차화통 할매구만요"
"허허허 또 봉만이라"
"일년에 한 번씩은 봐야지라"
"허허허"
"아들이 안 가고 있네요이"
"그렁께 소자란 말이요"

"아니 왜 아적까정 안가고 있다요?"
"어머니 대신 나와 있었구만요 하나라도 실어드려야제라"
"말씀도 고맙구만이라"

이 아들은 오후 늦게 나락을 담아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받아 늦더라도 싣고 오겠다고 했더니 기다렸습니다.
전화를 하고 거의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나락을 실으러 오는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도 참 고마웠습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 일곱 번째 이야기는 늙으신 어머니를 대신해 어둠 속에서 나락을 지키는 아들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21 22:52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샘골마을 <5>

오전 아홉시가 넘어 샘골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가운데 골목길을 구불구불 들어가 가장 윗 집입니다.
애마를 후진으로 해서 토방에 놓여 있는 나락을 실었습니다.

"건강하신게라?"
"벨라 건강허지가 못허시"
"어디가 안 좋으시간디요?"
"허리가 아퍼 수술을 했는디 계속 아파부네"
"척추 수술을 하셨당가요?"
"그려 1년이나 지났는디 이 모냥잉만"
"긍께요이 고 수술이 어려운 모양이더만요"

"인자 그러믄 농사를 그만 지셔야 쓰것는디요"
"그래도 살살 해봐야제 어찌 그러것는가"
"몸도 이렇게 불편하신디 무리허면 더 아파붑니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거듭니다.
"할아버지가 말을 안 들응께 문제제"
"아따 할아버지 할머니나 자식들 말을 잘 들어야제라"
"좀 더 머라고 해부소 정신 채리게"
"시골 부모님 아퍼불먼 자식들은 어떻게 하지도 못허고 속상해붑니다"
"......."

할아버지는 조용히 듣기만 하고 웃고 계셨습니다.
방아를 찧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왕겨와 쌀겨를 내리고 쌀을 내렸습니다.

"미안시러운디 쌀을 좀 창고에 쟁여주소"
"예 덜 바쁭께 그리 해드리겄습니다"
"고맙네이"

할아버지는 쌀집아저씨가 쌀을 내리는 내내 마루에 누워 계셨습니다.
방아를 찧으면서 왕겨를 담느라 무리를 하신 모양입니다.
나르는 쌀의 무게보다 누워있는 할아버지가 더욱 무거워 보였습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 다섯 번째 이야기는 아픈 몸과 일이 하나가 되어버린 우리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17 22:19 | 트랙백 | 덧글(0)

면민 체육대회



오늘 동면초등학교에서 면민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쌀집아저씨도 참가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윷놀이와 오자미 경기에 참여했습니다.
쌀집아저씨는 청년회에서 족구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아침 여덟시 부터 족구를 시작했습니다.
두 개조로 나뉘어 진행이 됐고 출발이 좋았습니다.
한 경기, 한 경기 이기고 마침내 우리 조 결승에 도착했습니다.
조 결승전 상대는 족구를 계속해온 팀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승리했습니다.
일찌감치 결승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다른 조 경기를 오후에 지켜봤습니다.
한 팀이 상당히 잘 하더니 결국 결승전 상대가 되었습니다.
결승전 시작.
상대팀은 조직력이 좋았고 공격수의 공격도 다양했습니다.
오래 쉬었던 탓인지 우리 팀의 조직력이 깨져 어려운 경기를 했습니다.
1세트를 맥없이 내주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하지만 지쳤는지 2세트마저 내주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출전한 윷놀이는 초반에 탈락했고, 아주머니들이 출전한 오자미 경기에서도 준우승을 차지 했습니다.
오후 5시 정도에 족구 결승전이 끝나고 쌀집아저씨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동 마을에 가서 나락을 실어와 찧어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샘골마을로 가서 한 차를 실어다 정미소에 두었습니다.
내일도 아침부터 방아를 찧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도 쉬지 못하는 피곤한 일주일이 가고 있습니다.
내일 오후부터 비가 온다니 조금 쉬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04 20:55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 정비 끝

오늘 드디어 정미소 정비가 끝이 났습니다.
지난 주부터 오래 걸렸습니다.
11월까지 거의 두 달을 열심히 달려야 하기에 신경을 많이 써야합니다.
우리 정미소는 나락을 가져와 바로 도정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기계 고장으로 인해 기다리게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은 마무리 정비를 했습니다.
엔진 라디에이터 청소를 했고, 형광등을 달았고, 벨트를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깨끗하게 청소를 했습니다.
정미소 바닥을 싹싹 쓸어 담아 거름간에 있는 닭들한테 전해줬습니다.
며칠 그걸 헤치고 먹느라고 잔치를 치르겠죠.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 정미소 사진을 올립니다.
작업 부분별로 몇 장 올립니다.
사진은 아직 청소를 하기 전이니 깨끗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현미부.
나락의 겉껍질을 까서 현미로 만드는 곳입니다.
두번째는 석발부.
두 대의 석발기가 현미에서 돌을 골라냅니다.
세번째로 정미소.
네 대의 정미기가 현미를 백미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네번째로 싸래기 분리부.
이번에 설치한 싸래기 거르는 기계입니다.
마지막으로 쌀탱크와 자동저울.
쌀을 저장하고 자동저울을 통해 알맞은 크기로 담는 곳입니다.

이해가 좀 오셨을랑가 모르겄네요이...












by 쌀집아저씨 | 2008/10/01 21:44 | 트랙백 | 덧글(0)

쌀겨 뿌리기

쌀집아저씨는 어제 논에 쌀겨를 뿌렸습니다.
쌀겨는 벼를 도정할 때 나오는 부드러운 가루입니다.
벼를 방아를 찧으면 제일 먼저 겉껍질인 왕겨가 벗겨집니다.
왕겨가 벗겨진 벼는 우리가 잘 아는 현미가 되는 셈입니다.
현미에서 더 방아를 찧으면 백미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쌀겨가 나옵니다.
요즘은 쌀겨에 영양이 많다고 해서 팩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쌀집아저씨가 모내기를 끝낸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모들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들의 색깔이 조금씩 녹색으로 변합니다.
이제 모들은 뿌리를 내리고 본격적인 새끼치기(분얼)을 시작합니다.
처음에 모내기 때 다섯 포기 남짓인데 새끼치기를 통해 몇 배가 늘어납니다.



이때 논에 쌀겨를 뿌려주면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물위에 층을 만들어 햇볕을 가려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아줍니다.
또 하나는 인산 성분이 풍부해 모가 새끼치기를 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경운기에 쌀겨를 다섯 포대 싣고가서 작업을 했습니다.
먼저 논두렁 군데 군데 다섯 포대를 나누어 놓고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무릎이 좋지 않아 논두렁을 돌면서 뿌렸습니다.
쌀집아저씨는 논속으로 들어가 골고루 뿌렸습니다.
바람이 불어 뿌리기 편했지만, 가루가 많이 날려 좀 힘이 들기도 했습니다.



쌀겨가 잘 녹아들어 잡초도 막아주고, 모 뿌리치기도 잘 해주기를 바랍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06/08 15:01 | 농부의 삶 | 트랙백 | 덧글(0)

기분 좋은 방아 찧기

어제 오전에 방아를 찧었습니다.
옥림마을.
쌀집아저씨가 참 좋아하는 마을입니다.
농로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 들어가는 산골마을인데 사람들이 참 푸근합니다.

2주 전부터 방아를 찧자고 했는데 쌀집아저씨가 모내기로 바빠서 틈을 내지 못했습니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간간이 비가 한 방울씩 흩뿌렸습니다.
작년에 정미소 문을 고쳐 애마 트럭을 넣을 수 있어 많은 비만 아니면 방아를 찧을 수 있습니다.

옥림마을에 도착했더니 벌써 나락을 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매년 두 세 차례씩 얼굴을 뵙는 분들이어서 더 반가웠습니다.


오늘은 모두 네 가구 방아를 찧어야 합니다.

먼저 마을 윗쪽에 사는 두 가구의 나락을 실었습니다.
아랫집에 사는 분도 나와서 함께 나락 싣는 것을 거들었습니다.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옥림마을의 모습이며, 쌀집아저씨가 옥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건강하게 일을 잘 하시던 분들이었는데 너무 힘에 부쳐 보였습니다.
두 가구 나락을 싣고 나니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냥 싣고 정미소로 왔습니다.
삼십 분 남짓 두 집 방아를 찧었습니다.
쌀이 여덟 가마 정도 나왔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에 생신잔치가 있어 방아를 찧어야 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잔치때도 쓰고 자식들 오면 들려서 보내시려고 한답니다.

 

쌀을 갖다 드리고 나머지 두 가구의 나락을 실었습니다.
나락을 싣고 있는데 옆에 사는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쌀집아저씨가 작년 가을에 쓴 정미소풍경에 나오신 분입니다.
올해 연세가 84세.
가만히 계시지 못하고 아주머니들을 비키라고 하더니 함께 나락을 실었습니다.
"안 힘드세요?"
"허허 헐만 허시."

나락을 싣고 와서 한 시간 남짓 방아를 찧어 갖다 드렸습니다.
두 가구 모두 양이 많아서 한 차 가득 했습니다.

 

옥림마을 방아를 찧으면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함께 어울려 조금씩 손을 거드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세 시간 남짓 옥림마을 방아를 찧었습니다.
기분좋은 일을 했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06/06 10:21 | 농부의 삶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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