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방아

정미소풍경 2009 여덟 - 찰동마을

오전에 방아를 찧었습니다.
찰동마을에서 직접 트럭으로 나락을 싣고 왔습니다.
해마다 집에 와서 방아를 찧어 낯이 익은 할머니입니다.
말씀은 하시는데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합니다.
가까이 가서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으면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십이 넘어 보이는 아들이 함께 왔습니다.

"할머니 잘 계셨지라이?"
"....."
"농사 그만 허시제 또 왔당가요?"
"....."

 
가까이 가서 뭐라고 하자 그제서야 씨익 하고 웃으십니다.
방아를 찧습니다.
할머니가 농사를 잘 지어 쌀이 윤기가 나고 좋습니다.
한 시간 정도 방아를 찧었습니다.
방아가 끝이 나고 쌀을 실으며 함께 온 아들과 얘기를 했습니다.

"할머니가 연세가 있어 농사 짓기 힘드시겄는디요이."
"글제라 근디도 허실라고 헝께 참..."
"연세도 있고 힘에 부치실 것인디요."
"긍께 내년에는 돈 드린다고 허시지 말라고 했는디 몰르겄구만이라."
"아마 내년 봄되면 또 허시겄제라이."
"그말이 맞을 것이요이."


할머니는 밖에서 왕겨를 열심히 담아 묶고 계십니다.
아마 아들과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시겠죠.
한 순간 우리를 돌아보더니 씨이익 웃으십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부모와 자식의 농사에 대한 팽팽한 줄다리기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1/12 22:30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일곱 - 옥림마을

오후 늦게 옥림마을에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제법 많은 양입니다.
일흔 여섯의 할아버지와 일흔 넷의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쌀집아저씨는 방아찧은 쌀을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락을 붓고 할머니는 왕겨를 담습니다.
힘든 일인데 쉼없이 일을 합니다.
방아를 다 찧고 집으로 갔습니다.

오르막길 길이라서 트럭을 후진했는데 짐이 무거워 혼이 났습니다.
결국 쌀겨를 내리고 쌀만 싣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애마도 덕분에 땀 좀 뺐을 겁니다.
도착해서 창고에 쌀을 내렸습니다.
쌀집아저씨와 할아버지가 내리고 할머니는 트럭위에 올라 쌀을 잡아당겨줍니다.

"할머니 왕겨 담는 솜씨를 봉께 일이 상당허시구만이라."
"나가 일하는 것이 남자같다고 혔다요 허허허."
"그렇구만이라이."
"헉헉헉 아이고 힘들구마이."
"천천히 허시씨요이."
"아따 그래도 일은 허게 만들어 드래야제라이."


쌀을 모두 내리고 차를 정리합니다.
할머니는 배를 깎아서 주십니다.

"맛나구만이라."
"고생 많았구만이라이."
"힘드시죠이?"
"죽을 정을 쳤구만이라."
"긍께요이."
"자식들 줄라고 허시지라?"
"글제라 근디 자석들은 요렇게 일허는지 몰르겄제라."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여운으로 남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죽을 경을 치고 일하는 늙으신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0/31 20:52 | 트랙백 | 덧글(0)

봄방아 찧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니 방아를 조금씩 찧기 시작합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하고 남겨 두었던 나락을 찧는 것이죠.

아침 일찍 순곡 마을로 가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 막내딸이 방아를 찧으러 왔습니다.
방아를 처음 찧어본다고 하더군요.
봄방아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쌀 80kg 10가마 정도를 찧었습니다.

방아를 거의 찧어갈 무렵 동네에서 리어카로 나락 몇 포대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방아를 찧어 놓고 순곡에 쌀을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동네 할머니 댁으로 차를 댔습니다.
길가에 있는 집인데 대문이 좁아 겨우 차가 들어가는 집입니다.
20 포대 넘게 많은 벼를 실었습니다.
방아를 찧으니 쌀 80kg  9가마 정도가 나왔습니다.
쌀을 실어다 드리고 쌀겨와 왕겨를 담았습니다.

쌀겨는 밭에 내서 고추밭 밑거름으로 쓸 생각입니다.
지난 번에 퇴비를 냈던 밭에 추가로 넣어야겠습니다.
방아를 모두 찧고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04/06 20:24 | 트랙백 | 덧글(0)

방아 찧고 퇴비 내고

     

4월 1일.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농촌도 바빠집니다.

오전에는 방아를 찧었습니다.
지실 마을로 가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비닐과 포장으로 잘 덮어 놨지만 쥐가 여지없이 뚫었더군요.
나중에 도망가는 녀석을 발길질로 잡았답니다.
이 할머니는 가을에 한 번, 이렇게 봄에 한 번 두 차례 방아를 찧습니다.
쌀을 실어다 드리고 음료수를 대접받고 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년 내내 묵었던 퇴비를 밭으로 내는 일입니다.
경운기가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마대에 담아 트럭에 실었습니다.
밭에 도착해 등에 지고 밭 이곳 저곳에 내렸습니다.
다음에 로터리 작업을 하기 전에 다른 퇴비와 함께 골고루 뿌려야겠습니다.



4월의 첫 날이었는데 바람도 세고 쌀쌀했습니다.
며칠 전 객토를 한 밭이라 흙먼지도 많이 날리더군요.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일을 끝내고 다시 영암 처가집으로 왔습니다.
이래 저래 바쁜 철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04/01 22:17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 수리와 방아 찧기

오늘은 정미소에서 일을 했습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되면 정미소 일이 적어집니다.
우평마을에서 방아를 찧기로 며칠 전에 약속을 했습니다.

아침 아홉 시.
인터넷을 설치하러 기사가 왔습니다.
전화선을 따고 선을 깔아 인터넷을 설치했습니다.
부모님께도 가르쳐 드려야겠고, 쌀집아저씨도 편하게 되었습니다.

아홉 시 삼십분.
정미소에 나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승강기 두 대를 청소하는 일입니다.
쌀이 오가는 승강기 두 대입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승강기에 붙어있던 쌀겨덩어리가 떨어지면서 통로를 막아 문제가 생깁니다.
겨우내 몇 번 방아를 찧지 않았지만 문제가 생겨 애를 먹었습니다.
두 승강기를 열어 속에 든 바가지도 청소하고 덮개도 벗겨 뭉쳐진 쌀겨덩어리들을 모두 떼어냈습니다.
아버지는 다르게 닳은 현미기 롤러를 서로 바꿔 끼었습니다.

청소를 하는 중에 산적님이 오셨습니다.
설 때 배즙을 주문하셔서 가지고 왔는데 이제야 전해드렸습니다.
이사 등으로 제가 짬을 못내서 많이 늦어졌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우주식량도 받았습니다.

계속 승강기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핸드폰 중계기를 설치하러 왔습니다.
얼마전에 핸드폰을 바꿨는데 화순집에서 전혀 터지지가 않습니다.
알아보니 영상폰은 기존과는 다른 중계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신청했더니 오늘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설치되어있던 통화폰 옆에 나란히 설치했습니다.
방안은 물론 마당에서도 잘 터지더군요.

다시 정미소로 와서 승강기 청소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손님이 왔습니다.
태양광 전기시설을 위해 현지조사를 나왔다고 합니다.
축전지를 설치할 자리를 둘러보고 얘기를 나누고 갔습니다.

정미소 정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명태국에 김치, 동치미, 깻잎.
시간은 이미 오후 한 시가 지났습니다.
어머니께서 방생을 가셔서 쌀집아저씨가 차리게 되었습니다.

우평마을로 향했습니다.
식당을 하는 집이라 수매를 하지 않고 쌀로 쓰는 집입니다.
벼로 두었다가 방아를 찧는 것이 밥맛이 좋습니다.
상당히 많은 양을 찧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 방아를 찧었고 열 두 가마 이상을 찧었습니다.
아저씨 혼자 오셨는데 나중에 아들이 와서 함께 거들었습니다.
식당을 하는 아주머니도 오셔서 둘러보고 갔습니다.

정미소일을 마치고 오후 늦게 영암 처가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아침이 집사람 생일인데 장모님이 생일 장만을 해놓으셨습니다.
덕분에 제가 맛있는 생일밥상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02/14 21:24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용생마을 <마지막>

오랜만에 방아를 찧었습니다.
바쁜 가을철이 끝났고, 날씨가 추워져 요즘은 방아가 뜸합니다.
우리 마을과 마산 마을, 다산 마을 방아를 조금씩 찧었습니다.
그동안 미뤄왔던 방아를 오늘 한꺼번에 찧은 셈입니다.

맨 먼저 우리 마을 방아를 찧었습니다.
동네 형님이 리어카에 나락을 싣고 왔습니다.
상당히 양이 많아 세 차례나 날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나락을 싣고 왔습니다.
그 옆에 딸내미 하나가 일하는 형님을 똘망똘망하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정신이 온전하지는 못합니다.
형님은 덩치가 크고 힘이 세지만 어렸을 적에 아파서 정상은 아닙니다.
농공단지에 다니며 일을 하고 쌀농사를 조금 짓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필리핀에서 온 형수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네 살, 다섯 살, 한 살 이렇게 아이가 셋입니다.

"형님 애기가 몇이다요?"
"싯이여"
"워메 둘 아니다요?"
"한 살 짜리 한나 더 있제"
"와따 힘 좀 써부렀구만이라"
"흐흐흐"

한 시간 남짓 방아를 찧어 다시 리어카로 쌀을 나릅니다.
쌀을 나르고, 쌀겨를 나르고, 왕겨를 나르고.
이마에 땀이 촘촘히 맺혔습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을 끝내려고 합니다.
그동안 방아가 뜸한 것도 있었지만 무슨 얘기를 할까 망설였습니다.
우리 농촌의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시인은 희망은 본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정상인과는 몸과 마음이 약간 다른 형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어머니.
필리핀에서 멀리 우리나라에 시집 온 형수님.
조금은 어색한 모습을 한 아이 셋.

2008년 정미소풍경 마지막 이야기는 이 동네 형님이 바로 우리 농촌의 희망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2/07 20:46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오곡마을 <14>

오랜만의 정미소 풍경입니다.
이제 올 가을 정미소 일이 마무리 되어 갑니다.
정미소 풍경도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오후에 오곡마을에서 나락을 싣고 왔습니다.
콤바인 포대가 60개 남짓이 되었습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함께 왔습니다.
정미소에 도착해보니 할머니 한 분이 딸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리 서로 약속을 한 모양입니다.
낯이 익은 할머니입니다.

방아를 모두 찧었습니다.
할머니는 쌀포대에 비닐을 넣고, 쌀겨를 담았습니다.
아들은 왕겨를 담았습니다.
할머니가 기분이 좋으신지 말씀을 시작합니다.

"아따 쌀이 많이 나부렀구만이라"
"할머니가 농사를 잘 지셨구만이라"
"아니 나는 인자 못허고 쩌그 아들이 처음으로 했는디 아조 잘 되얐네요"
"올해 날씨도 좋고 해서 풍년이구만요"
"원래 지 아부지가 지었는디 저 시상 가부렀구만이라"
"그러셨구만이라"
"찹쌀 있다요?"
"예 있는디요"
"쌀하고 한나씩 바꿉시다 "
"가격 차이가 있는디요"
"차이는 돈으로 드래야제라"
"예 그러시죠"

아들 둘이서 소를 키우는 농장에 왕겨와 쌀겨, 쌀 몇 포대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할머니가 사는 오곡 마을 집으로 나머지 쌀을 내렸습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 열네 번째 이야기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농촌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1/17 23:06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백동마을 <10>

아침 일찍 백동마을 방아를 찧어 드렸습니다.
집으로 방아를 찧어 쌀을 가지고 갔습니다.
왕겨와 쌀겨를 내리고 쌀을 내립니다.

"건강하시구만이라"
"인자는 많이 힘이 드시"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능가요?"
"팔십 둘이시"
"전 칠학년인지 알았는디"
"허허허"

"오늘 아침밥도 안묵고 기둘렸다요"
"아니 어르신 밥을 잡사야제 왜 그러셨당가요?"
"난 뭔가 바쁜 일이 있으먼 그 일이 끝나야 밥을 묵네"
"그러시구만요"

키가 크고 건강하신 어르신이었습니다.
이제는 연세가 많아 힘이 딸리긴 하지만 여전히 건강하십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 열 번째 이야기는 일을 앞에 두고 밥도 거르고 기다리는 어르신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29 22:46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옥림마을 <3>

오후에 구수마을 방아를 찧어 가는데 옥림 사는 어르신이 차를 잡습니다.
"왜 그러신당가요?"
"나도 방아 좀 찧어야 쓰것네"
"전화가 안됭만"
"어 전화 안왔는디 어르신이 잘못 눌렀능갑습니다"

어르신이 사는 옥림마을은 구수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립니다.
"타세요 쌀 푸고 함께 가시게요"
"글먼 그럴까"

구수 마을에 도착해서 왕겨를 내리고 쌀겨를 내리고 쌀을 내렸습니다.
집안 창고방에 쌀을 차곡차곡 쌓아드렸습니다.
함께 오신 옥림 어르신이 기어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따 어르신 그냥 쉬시씨요"
"글먼 안되제"
"그럼 싸목싸목 허시랑께요"
"알았네이"
대답은 그리 하셨지만 결국 쌀집아저씨와 번갈아 하나씩 내렸답니다.

할머니가 전해주신 포도즙을 마시고 옥림마을로 출발.
어르신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 콤바인 포대를 하나씩 전해주고 쌀집아저씨는 밖에서 받아 바로 차에 싣습니다.
50개 정도 되는 상당한 양입니다.
절반 나마 하다가 잠깐 쉬었습니다.

"어르신 힘드시죠?"
"쪼까 그렁만"
"올해 연세가 어찌 되셨당가요?"
"여든하고 넷이시"
"작년에 어르신이 전한테 아직은 짱짱허시 그려셨는디요"
"허허허 아따 근디 작년하고 오래하고 아주 다르시"
"그러시구만이라 그럼 인자 농사 그만 해야쓰것구만요"
"글먼 못쓰제 사람이 힘이 있는 한 일을 혀야 쓰는 것이제"

그렇게 나락을 싣고 정미소로 와서 방아를 찧어 다시 가져다 드렸습니다.
"어르신 내년에는 다시 짱짱해지셔야제라"
"맘대로 될랑가 몰르것네"
"그먼 안된디요"
"내년 일은 내년 되봐야 알겄구만"
"건강허세요이"

2008년 정미소풍경 세번째 얘기는 1년 사이에 많이 늙으신 어르신과 우리 농촌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13 21:36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오도미마을 <2>

저녁 여섯 시가 넘으니 세상이 어두컴컴합니다.
오도미 마을로 방아를 찧어 싣고 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좁아 리어카에 쌀을 실어주고 짐칸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저만치서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밀며 약간 오르막길을 힘겹게 걸어오셨습니다.

"누구다요?"
"정미소집 아들인디요이"
"잘 몰것는디 한나도 안 타겠구만"
"아따 할머니 잘 보시씨요이"
"어디... 인자 봉께 좀 타건것 같기도헝만"

"우리 사우도 방아 찧어야된디"
"동물병원 말입니까?"
"잘 앙만"
"지난 번에 보니 논에 피가 많아 뽑으라고 했는디요"
"바쁭께 긍가꾸만"

"연세가 어찌 되셨당가요?"
"여든허고 여섯이제"
"아따 할머니 총허시구만이라"
"헤헤헤"

"할머니가 올해 연세가 어찌됐당가?"
"할머니 돌아가신지가 몇 년 되얐든디요"
"나두 안디 연세가 궁금해가꼬"
"올해 살아 계시믄 아흔 아홉이구만요"
"글쿠만 할머니 참 좋았는디..."
"나 인자 가볼라네"
"예 건강허시씨요"

2008년 두번째 정미소 풍경은 이웃 할머니를 통해 본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11 23:1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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