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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풍경 2009 열 셋 - 지실마을

지실마을 방아를 찧었습니다.
지실마을은 화순읍 쪽으로 1km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지실마을에서 방아를 찧는 가구는 네 가구 정도 됩니다.

트럭을 몰고 한 골목의 끝집으로 들어갑니다.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어서 오시씨요이."
"건강하셨제라이?"
"디스크가 있어가꼬 몸이 좋덜 못허구만이라."
"글구만이라."
"어라 올해는 농사가 째깐헌디요?"
"긍께 말이요이 쩌그 앞 도로공사에 들가불고 그렁만요."
"그먼 줄어붕김에 그만 허셔불제라이."
"심들어도 더 늘려불라고 생각헌디라우."
"워메 줄이시랑께 왜 그런답니까?"
"자석들도 줄이라고 허지만 인사치례제라 농사지서 주먼 좋아헌디라우."
"그래도 몸이 힘든디 줄여야제라."
"내가 쌀쌀 움직일수만 있으먼 어쩌꼬롬해서 줘야제라."


방아를 찧는 내내 허리가 불편해 바라보기만 할 뿐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농사를 더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10년 이상을 보았는데 한 해 한 해가 다른 것 같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자식들의 인사치례와 부모님의 고단한 보람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2/04 17:18 | 트랙백 | 덧글(0)

만남

어제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습니다.
면소재지 우체국에 들러 쌀을 택배로 부쳤습니다.
내년도 달력을 주셨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수고로움에 감사의 표시로 귤 한 상자를 드렸습니다.



면 소재지를 뒤로 하고 농로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논에는 하얀 된서리가 자욱합니다.
차에서 내려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농로길이 끝나고 비포장의 오르막길이 시작됩니다.
서성리로 넘어가는 콩재랍니다.
몇 구비를 지나 콩재 정상, 또 구비 구비 내려가니 서성리가 나옵니다.



새로운 분을 만났습니다.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는 젊은 분이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처음 뵈었는데 작은 황토집에 푹 빠졌습니다.
황토집도 집이지만 주변의 풍광과 앞으로 펼쳐진 저수지가 너무 좋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지나다니기만 했지 거기에 멈춰 주변을 둘러본 적이 없었습니다.



직접 끓여주시는 보이차를 마시면서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하면서....
맑고 깨끗한 공기를 온 몸에 넣고 왔습니다.
앞으로 좋은 만남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명함을 가지고 왔습니다.
눈에 확 띄는 문구가 있습니다.

"나눔과 소통의 쉼터"

by 쌀집아저씨 | 2009/12/03 08:45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열하나 - 찰동마을

찰동마을에 한 목소리 하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쌀집아저씨가 "기차화통" 할머니라고 부르는 분입니다.

할머니 목소리가 2년 전부터 작아졌습니다.
뒷뜰에 있는 커다란 고무통에 쌀을 부어드립니다.
왕겨와 쌀겨를 밭 아래까지 가져다 드립니다.

모든 일을 끝냈습니다.
도정료를 돈으로 계산하는데 돈이 남습니다.

"아따 할매 돈을 더 주셔불고 고맙구만이라."
"역실로 그랬는디."
"아니 왜라우?"
"일을 요렇게 해줘붕께 고마와가꼬 글제이."
"해드리는 것도 좋은 일이제라이."
"그건 그거고 남지기 돈은 안받을라요."
"먼소리여 받아야제."
"돈 더 받을라고 해드랬간디라우."
"글먼 젖먹이 있다매 맛난거 사줘불면 되겄네이."
"흐흐흐"


기차화통 할매 덕분에 우주 맛있는 것 사줘야겠습니다.
해가 다르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느껴지는 할머니입니다.
내년에도 할머니를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농사일 가운데 맺어진 끈끈한 정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1/25 21:25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일곱 - 옥림마을

오후 늦게 옥림마을에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제법 많은 양입니다.
일흔 여섯의 할아버지와 일흔 넷의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쌀집아저씨는 방아찧은 쌀을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락을 붓고 할머니는 왕겨를 담습니다.
힘든 일인데 쉼없이 일을 합니다.
방아를 다 찧고 집으로 갔습니다.

오르막길 길이라서 트럭을 후진했는데 짐이 무거워 혼이 났습니다.
결국 쌀겨를 내리고 쌀만 싣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애마도 덕분에 땀 좀 뺐을 겁니다.
도착해서 창고에 쌀을 내렸습니다.
쌀집아저씨와 할아버지가 내리고 할머니는 트럭위에 올라 쌀을 잡아당겨줍니다.

"할머니 왕겨 담는 솜씨를 봉께 일이 상당허시구만이라."
"나가 일하는 것이 남자같다고 혔다요 허허허."
"그렇구만이라이."
"헉헉헉 아이고 힘들구마이."
"천천히 허시씨요이."
"아따 그래도 일은 허게 만들어 드래야제라이."


쌀을 모두 내리고 차를 정리합니다.
할머니는 배를 깎아서 주십니다.

"맛나구만이라."
"고생 많았구만이라이."
"힘드시죠이?"
"죽을 정을 쳤구만이라."
"긍께요이."
"자식들 줄라고 허시지라?"
"글제라 근디 자석들은 요렇게 일허는지 몰르겄제라."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여운으로 남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죽을 경을 치고 일하는 늙으신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0/31 20:52 | 트랙백 | 덧글(0)

봄방아 찧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니 방아를 조금씩 찧기 시작합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하고 남겨 두었던 나락을 찧는 것이죠.

아침 일찍 순곡 마을로 가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 막내딸이 방아를 찧으러 왔습니다.
방아를 처음 찧어본다고 하더군요.
봄방아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쌀 80kg 10가마 정도를 찧었습니다.

방아를 거의 찧어갈 무렵 동네에서 리어카로 나락 몇 포대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방아를 찧어 놓고 순곡에 쌀을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동네 할머니 댁으로 차를 댔습니다.
길가에 있는 집인데 대문이 좁아 겨우 차가 들어가는 집입니다.
20 포대 넘게 많은 벼를 실었습니다.
방아를 찧으니 쌀 80kg  9가마 정도가 나왔습니다.
쌀을 실어다 드리고 쌀겨와 왕겨를 담았습니다.

쌀겨는 밭에 내서 고추밭 밑거름으로 쓸 생각입니다.
지난 번에 퇴비를 냈던 밭에 추가로 넣어야겠습니다.
방아를 모두 찧고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04/06 20:24 | 트랙백 | 덧글(0)

정나누기 후기

2009년 새해를 맞이해서 첫 번째 정나누기를 하고 왔습니다. 
후원자님의 후원물품을 받아 아침 9시가 넘어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 가구에 들렀습니다.
할머니께서 알아보시고 반가워 합니다.
쌀과 라면을 내려놓고 나왔습니다.
나오는 뒤로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고 인사를 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잠깐 밖에 가셔서 보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가구로 갔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좀 있어 어머니와 한 시간 넘게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오전에 쉬는 날이라서 좀 더 여유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이제 대학생이 됩니다.
학과 선택을 잘 해서 착실히 공부하고 졸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친척분 도움을 받아 운전면허 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작은 아들은 독감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네요.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고 공부도 아주 잘하는 학생입니다.
어머니도 일을 하시느라 좀 무리를 했는지 지난 달 중순에 서울에 가서 하루동안 치료를 받고 오셨다고 합니다.
몸은 좋지 않은데 일을 무리하게 하시니 몸이 아픈 것 같습니다.

오늘은 쌀집아저씨가 어머니께 말씀 드릴 것이 있어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두 가지 말씀을 드렸고 생각해 보시라고 했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밖이 환해짐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도 저도 서로 희망을 가지고 나온 느낌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12월 정기 후원금을 어제야 보냈습니다.
보통은 월초에 보내는데 집 고치는 문제로 정신이 다른 데 있었나 봅니다.
다른 달보다 좀 더 많은 후원금을 보내드렸답니다. 
그리고 연말정산용 기부금 영수증을 위해 사회복지관으로 입금을 했습니다.

올해 첫 정나누기를 마쳤습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만큼 정나누기도 더욱 발전해서 우리가 좀 더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01/08 21:39 | 트랙백 | 덧글(0)

쌀집아저씨의 메모지

화순집을 고치는 일이 1주일 이상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용도실과 화장실 타일을 바르는 일을 합니다.
두 분이 함께 오셔서 작업을 해서 쌀집아저씨가 여유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미뤄왔던 일들을 하고 다녔답니다.

아래 메모지는 가로 5cm, 세로 3.5cm네요. ^^



잡곡을 준비해서 우체국에 가서 네 분께 쌀을 부쳤습니다.
우체국 택배 가격이 오른다고 하는군요.
내일 있을 정나누기용 쌀을 준비했습니다.
직접 전해드릴 새해소망 이벤트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면 보건소에 들러 집사람 철분제를 받았습니다.
농협에 들러 정미소 화재보험을 넣을 준비를 했습니다.
생일을 맞은 동네 친구에게 축하 전화를 하고 밭에 흙을 넣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화순읍에 있는 영빈관에 들러 아버지 생신 기념 점심식사를 예약했습니다.
군청에 들러 19일부터 있을 정보화교육 계획을 확인했습니다.



광주 사는 고객분께 쌀과 잡곡을 배달해 드렸습니다.
면사무소에 들러 복지담당 선생님과 정나누기2를 준비했습니다.
내일 후원가구를 함께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정나누기 후원자용 소득공제 영수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객들께 보내드릴 잡곡을 준비하는 메모도 들어있네요.

요즘은 이것 저것 해야 할 일이 많으면 메모를 합니다.
잊어먹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고, 좀 더 잘 준비하기 위해서랍니다.
쌀집아저씨는 오늘...
발바닥에 땀나게 다녔답니다. ^^

by 쌀집아저씨 | 2009/01/07 17:30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용생마을 <마지막>

오랜만에 방아를 찧었습니다.
바쁜 가을철이 끝났고, 날씨가 추워져 요즘은 방아가 뜸합니다.
우리 마을과 마산 마을, 다산 마을 방아를 조금씩 찧었습니다.
그동안 미뤄왔던 방아를 오늘 한꺼번에 찧은 셈입니다.

맨 먼저 우리 마을 방아를 찧었습니다.
동네 형님이 리어카에 나락을 싣고 왔습니다.
상당히 양이 많아 세 차례나 날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나락을 싣고 왔습니다.
그 옆에 딸내미 하나가 일하는 형님을 똘망똘망하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정신이 온전하지는 못합니다.
형님은 덩치가 크고 힘이 세지만 어렸을 적에 아파서 정상은 아닙니다.
농공단지에 다니며 일을 하고 쌀농사를 조금 짓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필리핀에서 온 형수님과  결혼을 했습니다.
네 살, 다섯 살, 한 살 이렇게 아이가 셋입니다.

"형님 애기가 몇이다요?"
"싯이여"
"워메 둘 아니다요?"
"한 살 짜리 한나 더 있제"
"와따 힘 좀 써부렀구만이라"
"흐흐흐"

한 시간 남짓 방아를 찧어 다시 리어카로 쌀을 나릅니다.
쌀을 나르고, 쌀겨를 나르고, 왕겨를 나르고.
이마에 땀이 촘촘히 맺혔습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을 끝내려고 합니다.
그동안 방아가 뜸한 것도 있었지만 무슨 얘기를 할까 망설였습니다.
우리 농촌의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시인은 희망은 본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정상인과는 몸과 마음이 약간 다른 형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어머니.
필리핀에서 멀리 우리나라에 시집 온 형수님.
조금은 어색한 모습을 한 아이 셋.

2008년 정미소풍경 마지막 이야기는 이 동네 형님이 바로 우리 농촌의 희망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2/07 20:46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오곡마을 <14>

오랜만의 정미소 풍경입니다.
이제 올 가을 정미소 일이 마무리 되어 갑니다.
정미소 풍경도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답니다.

오후에 오곡마을에서 나락을 싣고 왔습니다.
콤바인 포대가 60개 남짓이 되었습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함께 왔습니다.
정미소에 도착해보니 할머니 한 분이 딸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미리 서로 약속을 한 모양입니다.
낯이 익은 할머니입니다.

방아를 모두 찧었습니다.
할머니는 쌀포대에 비닐을 넣고, 쌀겨를 담았습니다.
아들은 왕겨를 담았습니다.
할머니가 기분이 좋으신지 말씀을 시작합니다.

"아따 쌀이 많이 나부렀구만이라"
"할머니가 농사를 잘 지셨구만이라"
"아니 나는 인자 못허고 쩌그 아들이 처음으로 했는디 아조 잘 되얐네요"
"올해 날씨도 좋고 해서 풍년이구만요"
"원래 지 아부지가 지었는디 저 시상 가부렀구만이라"
"그러셨구만이라"
"찹쌀 있다요?"
"예 있는디요"
"쌀하고 한나씩 바꿉시다 "
"가격 차이가 있는디요"
"차이는 돈으로 드래야제라"
"예 그러시죠"

아들 둘이서 소를 키우는 농장에 왕겨와 쌀겨, 쌀 몇 포대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할머니가 사는 오곡 마을 집으로 나머지 쌀을 내렸습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 열네 번째 이야기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농촌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1/17 23:06 | 트랙백 | 덧글(0)

쌀집아저씨와 고객과의 통화

낮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아주머니였습니다.

"찹쌀이 좋아서리 주문할라카는디"
"아 그러시구만이라 얼마나 보내드릴까요?"
"일단 20kg만 보내주실랍니꺼. 보고 좋으면 더 주문할께요"
"예 그러세요"
"얼만교?"
"전단지 넣어서 보낼테니 받아보고 좋으시면 보내세요"
"아따 아저씨 말씀이 고마와서 기냥 80kg 주문헐랍니다"
"고맙습니다"

결국 이 아주머니께 찹쌀 80kg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격 계산을 잘못해서 결국 깎아드린 셈이 되었답니다. ^^


오후 늦게 우체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택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니 뭔 문제가 생겼답니까?"
"포대를 떨어뜨렸는데 속에 있던 보리쌀이 터져서 현미와 섞였습니다. 저희가 배상을 해 드릴테니 내일 다시 보내시죠"
"제가 고객하고 통화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고객과 통화를 하고 상황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터져버린 보리쌀은 쌀집아저씨가 선물로 조금 넣은 것입니다.
그 고객은 현미와 보리를 섞어 먹으니 그냥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오늘 두 고객과 통화를 했습니다.
고객은 쌀집아저씨와 거래를 하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화와 대화는 항상 보람차고 즐겁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1/14 22:47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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