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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집아저씨의 농촌소식 (동지)

 

 

 

 

 

 

 안녕하세요 쌀집아저씨입니다.


나흘 째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밤에 내리다 낮에는 녹고 또 밤에 내리고...
날씨도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이틀 뒤면 동지(冬至)네요.

동지는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입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습니다.

팥죽의 붉은 색이 잡귀를 몰아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동지 때는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보리밟기를 합니다.
벼농사는 농한기에 접어들지만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쑤기로 부산할 때랍니다.

 

쌀집아저씨도 요즘은 가을걷이와 정미소 일을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가을 정미소일을 소재로 썼던 정미소풍경도 마무리 했습니다.
마지막 편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들러주세요. ^^

 

지난 금요일에 공공비축미 수매를 했습니다.
낮이 되니 도로에 눈이 많이 녹았습니다.
부모님과 이른 점심을 먹고 1톤 트럭으로 두 번 나락을 실어 날랐습니다.
검사관이 나락이 좋다고 얘기하며 이전에 검사했던 벼와 비교를 했습니다.
우리 벼가 알곡이 훨씬 크고 잘 여물었습니다.
제초를 열심히 해서 피나 앵미가 없어 나락도 깨끗했습니다.
결과는 모두 특등.
수매는 특등, 1등, 2등, 등외 이렇게 구분이 됩니다.
아버지도 지금까지 수매를 했지만 모두 특등을 맞은 것이 처음이라고 기뻐하십니다.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농사지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우주는 이제 9개월이 지났답니다.
우주가 자유롭게 기고 앉기 시작하면서 손이 정교해져 갑니다.
이제는 탁구공이나 검정콩을 가지고 놀고 있습니다.
검정콩을 던졌다가 엉금엉금 기어가서 앉은 다음에 어렵게 손으로 잡습니다.
박수를 쳐줬더니 엉덩이를 들썩이며 좋아하다가 다시 던집니다.
그리고 잡고 나서는 고개를 돌려 쳐다봅니다.
잘했으니 박수 쳐달라는 것이겠죠. ^^


올해도 이제 열흘 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무리 잘 하시고 좋은 계획도 많이 세우시기 바랍니다.


참, 그리고 올해도 새해소망 이벤틀 마련합니다.
홈페이지에 오셔서 많은 참여 바랍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조심하세요.
쌀집아저씨의 동지 소식이었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2/20 21:08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마지막 - 아버지

이번 이야기가 올해  정미소 풍경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향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 덕분이다.
물론 부모님은 지금도 농부가 된 것을 마냥 좋아하시지는 않는다.

가을 정미소일이 마무리 되었다.
아버지도 연세가 있어 올해는 일을 좀 줄였다.
내년에는 더 줄일 계획이다.

올 가을 정미소 일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 세 가지가 남아있다.

가을 초반에 아버지가 벨트에 손가락을 다치셨다.
오른 쪽 새끼 손가락이 벨트에 끼어 끝이 깨졌다.
쌀포대를 묶는 손이라서 제대로 포대를 묶을 수가 없었다.
일을 줄이고 쌀집아저씨가 정미소에 붙어 아버지와 함께 며칠 일을 했다.
가끔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아픈 손가락으로 하루 종일 일을 계속하셨다.

저녁에 다른 마을에 방아를 찧어 쌀을 싣고 갔다.
아버지와 함께 갔는데 할머니 혼자여서 주거니 받거니 짐을 내렸다.
골목에서 창고까지 이십 여 미터가 됐다.
창고에 들어가는 입구가 높아서 받침대를 놓았으나 여전히 높기만 했다.
아버지는 쌀을 짊어지고 블럭 위에 한 발을 내딛고 쉬었다 올라가셨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무거웠다.

저녁 때 그 날 마지막 방아를 찧다가 벌어진 일이다.
아버지와 얘기를 하다가 말다툼을 심하게 한 적이 있었다.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 죄송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중에 아버지께 잘못을 빌지도 않았다.
지난 사십 년 동안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랬나보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어렵고 먼 분이 바로 아버지였던 것 같다.

정미소 일은 몸으로 하는 힘든 일이다.
아버지도 이제 칠순이 되었다.
쉬실 때가 된 것이다.

정미소일도 농사일도 이제 쌀집아저씨 책임이다.
부모님은 항상 걱정이지만 이제 그 걱정을 쌀집아저씨가 떨쳐내야겠다.
올 가을 정미소의 아버지 모습을 돌아보며 내 자신을 돌아본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쌀집아저씨와 함께 땀 흘리는 칠순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2/14 21:17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열 셋 - 지실마을

지실마을 방아를 찧었습니다.
지실마을은 화순읍 쪽으로 1km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지실마을에서 방아를 찧는 가구는 네 가구 정도 됩니다.

트럭을 몰고 한 골목의 끝집으로 들어갑니다.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어서 오시씨요이."
"건강하셨제라이?"
"디스크가 있어가꼬 몸이 좋덜 못허구만이라."
"글구만이라."
"어라 올해는 농사가 째깐헌디요?"
"긍께 말이요이 쩌그 앞 도로공사에 들가불고 그렁만요."
"그먼 줄어붕김에 그만 허셔불제라이."
"심들어도 더 늘려불라고 생각헌디라우."
"워메 줄이시랑께 왜 그런답니까?"
"자석들도 줄이라고 허지만 인사치례제라 농사지서 주먼 좋아헌디라우."
"그래도 몸이 힘든디 줄여야제라."
"내가 쌀쌀 움직일수만 있으먼 어쩌꼬롬해서 줘야제라."


방아를 찧는 내내 허리가 불편해 바라보기만 할 뿐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농사를 더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10년 이상을 보았는데 한 해 한 해가 다른 것 같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자식들의 인사치례와 부모님의 고단한 보람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2/04 17:18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 후배

오전에 아버지와 정미소에서 방아를 찧었습니다.
공공근로를 하느라 방아를 찧지 못한 두 가구 방아를 찧었습니다.
오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조금 쉬었다가 도곡면 후배한테 갔습니다.
정미소를 하는 후뱁니다.
현미를 백미로 도정하는 정미기를 가지러 갔습니다.
후배가 쓰는 회사 제품이 아니어서 필요가 없습니다.
쌀집아저씨네 정미소에서 쓰는 제품입니다.

조금 기다리니 후배가 도착했습니다.
올해 손을 본 정미소를 둘러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함께 간 아버지는 색채선별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미소를 둘러보고 정미기가 있는 창고로 갔습니다.
쌀집아저씨네 정미소에서 쓰는 정미기보다 새 것입니다.
정미기 네 대를 트럭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미소 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로 아버지와 후배가 얘기를 하고 쌀집아저씨는 듣고 있었습니다.

가을 일 얘기, 인부 얘기, 색채선별기 얘기, 정미소 신설 얘기 .....

얘기는 거의 두 시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촌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농사를 짓고 싶은지,
정미소의 모습은 어떨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그림처럼 지나갑니다.

40 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낡은 문패,
농촌의 사계절이 소박하게 그려진 담벼락,
신기한듯 방아를 찧어보는 아이들...

이런 모습의 정미소를 그려봤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2/02 00:00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열둘 - 구수마을

구수마을로 갔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나락을 트럭에 실었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함께 오셨습니다.

몇 년 동안 방아를 찧어 낯이 익은 분입니다.
정미소에서 일을 하는데 힘이 드시니 푸념을 하십니다.

"할머니 일헐 사람이 있어야 쓰겄는디라우."
"긍께 말이요이 아덜한테 전화해봐야 쓰것구만이라."


전화기를 빌려 드렸더니 통화를 합니다.

"온 삭신이 아퍼 죽겄소."
"긍께요이 연세도 있고 일이 많응께 글제라이."
"자석도 한나 있는 놈이 일을 안헌당께라."
"아니 왜 일을 안헌답니까?"
"몰르제라우."
"결혼은 했답니까?"
"결혼도 했고 애도 있는디"
"....."


나중에 사정을 들어보니 도시에 살다가 이혼을 하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꾸준히 일도 하지 않는답니다.
늙은 어머니께 의탁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사십 줄에 앉은 젊은 사람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골에 보면 조손가정이 많습니다.
도시 자식들이 문제가 생기면 자식들을 부모님께 보냅니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자식의 갑갑한 삶과 그를 보는 어머니의 힘겨움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1/29 20:48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열하나 - 찰동마을

찰동마을에 한 목소리 하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쌀집아저씨가 "기차화통" 할머니라고 부르는 분입니다.

할머니 목소리가 2년 전부터 작아졌습니다.
뒷뜰에 있는 커다란 고무통에 쌀을 부어드립니다.
왕겨와 쌀겨를 밭 아래까지 가져다 드립니다.

모든 일을 끝냈습니다.
도정료를 돈으로 계산하는데 돈이 남습니다.

"아따 할매 돈을 더 주셔불고 고맙구만이라."
"역실로 그랬는디."
"아니 왜라우?"
"일을 요렇게 해줘붕께 고마와가꼬 글제이."
"해드리는 것도 좋은 일이제라이."
"그건 그거고 남지기 돈은 안받을라요."
"먼소리여 받아야제."
"돈 더 받을라고 해드랬간디라우."
"글먼 젖먹이 있다매 맛난거 사줘불면 되겄네이."
"흐흐흐"


기차화통 할매 덕분에 우주 맛있는 것 사줘야겠습니다.
해가 다르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느껴지는 할머니입니다.
내년에도 할머니를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농사일 가운데 맺어진 끈끈한 정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1/25 21:25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열 - 우평마을

우평 마을 방아를 찧었습니다.
일흔 셋 할아버지와 일흔 하나 할머니가 방아를 찧으러 오셨습니다.
두 분이서 일을 나눠 열심히 방아를 찧습니다.

방아를 찧어 다시 가지고 갑니다.
할머니는 쌀겨포대를 내립니다.
할아버지는 쌀집아저씨와 함께 쌀포대를 나릅니다.
창고가 가까워 쌀포대를 나를만 합니다.
그래도 무거운데 일흔 셋 할아버지는 일하시는 힘이 상당합니다.

"어르신 건강허시구만이라."
"글먼 건강해야제이."
"농사일은 어떠신게라?"
"풍년이제. 아따 근디 인자 힘들구만."
"인자 그만 허셔야제라?"
"글긴 헌디 자석들 키우고낭께 암껏도 없어부네."
"참 그렇구만이라."
"인자 거죽만 남어부렀능갑네."
"그래도 자식들 잘 키우셨잖습니까."
"글긴 헌디 시방도 농사를 안지을 수가 없구만이."


일흔이 훌쩍 넘으신 두 어르신은 건강해 보였습니다.
건강해 보이신다고 모두 건강한 것은 아니겠죠.

2009년 정미소풍경은 자식들 뒷바라지에 거죽만 남은 부모님의 주름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1/22 21:28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아홉 - 샘골마을

샘골마을로 갔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윗집입니다.
좁은 골목을 지나 마당까지 트럭이 들어갑니다.
마당 앞 감나무에 빨갛게 홍시가 매달려 있습니다.
상당히 연세가 많은 할머니입니다.
그냥 보아도 칠순 중반은 되어 보입니다.

"농사 허실만 헝가요?"
"아따 힘들제라이."
"그먼 그만 해야제 뭐하러 계속 허신다요?"
"그래도 시골 삼스로 요것이라도 해야제라."
"요거 해서 어따 쓸라고요?"
"자석들 줘야제라이."
"자석들이 많답니까?"
"많제라."
"그먼 많도 않구만 어찌 나눠주신다요?"
"딸언 한 가마니 주고 아덜은 계속 주제라이."
"아니 요즘은 딸덜이 잘헌당만 왜 차별을 허신다요?"
"아따 그래도 아덜이 생각허는 것이 달른디라우."
"....."


쌀집아저씨 생각에 많지 않은 농사에 자식들 나눠주기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적은 농사에 자식 나눠줄 고민하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1/17 21:25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여덟 - 찰동마을

오전에 방아를 찧었습니다.
찰동마을에서 직접 트럭으로 나락을 싣고 왔습니다.
해마다 집에 와서 방아를 찧어 낯이 익은 할머니입니다.
말씀은 하시는데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합니다.
가까이 가서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으면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십이 넘어 보이는 아들이 함께 왔습니다.

"할머니 잘 계셨지라이?"
"....."
"농사 그만 허시제 또 왔당가요?"
"....."

 
가까이 가서 뭐라고 하자 그제서야 씨익 하고 웃으십니다.
방아를 찧습니다.
할머니가 농사를 잘 지어 쌀이 윤기가 나고 좋습니다.
한 시간 정도 방아를 찧었습니다.
방아가 끝이 나고 쌀을 실으며 함께 온 아들과 얘기를 했습니다.

"할머니가 연세가 있어 농사 짓기 힘드시겄는디요이."
"글제라 근디도 허실라고 헝께 참..."
"연세도 있고 힘에 부치실 것인디요."
"긍께 내년에는 돈 드린다고 허시지 말라고 했는디 몰르겄구만이라."
"아마 내년 봄되면 또 허시겄제라이."
"그말이 맞을 것이요이."


할머니는 밖에서 왕겨를 열심히 담아 묶고 계십니다.
아마 아들과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시겠죠.
한 순간 우리를 돌아보더니 씨이익 웃으십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부모와 자식의 농사에 대한 팽팽한 줄다리기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1/12 22:30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일곱 - 옥림마을

오후 늦게 옥림마을에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제법 많은 양입니다.
일흔 여섯의 할아버지와 일흔 넷의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쌀집아저씨는 방아찧은 쌀을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락을 붓고 할머니는 왕겨를 담습니다.
힘든 일인데 쉼없이 일을 합니다.
방아를 다 찧고 집으로 갔습니다.

오르막길 길이라서 트럭을 후진했는데 짐이 무거워 혼이 났습니다.
결국 쌀겨를 내리고 쌀만 싣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애마도 덕분에 땀 좀 뺐을 겁니다.
도착해서 창고에 쌀을 내렸습니다.
쌀집아저씨와 할아버지가 내리고 할머니는 트럭위에 올라 쌀을 잡아당겨줍니다.

"할머니 왕겨 담는 솜씨를 봉께 일이 상당허시구만이라."
"나가 일하는 것이 남자같다고 혔다요 허허허."
"그렇구만이라이."
"헉헉헉 아이고 힘들구마이."
"천천히 허시씨요이."
"아따 그래도 일은 허게 만들어 드래야제라이."


쌀을 모두 내리고 차를 정리합니다.
할머니는 배를 깎아서 주십니다.

"맛나구만이라."
"고생 많았구만이라이."
"힘드시죠이?"
"죽을 정을 쳤구만이라."
"긍께요이."
"자식들 줄라고 허시지라?"
"글제라 근디 자석들은 요렇게 일허는지 몰르겄제라."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여운으로 남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죽을 경을 치고 일하는 늙으신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0/31 20:52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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