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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풍경 2009 열하나 - 찰동마을

찰동마을에 한 목소리 하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쌀집아저씨가 "기차화통" 할머니라고 부르는 분입니다.

할머니 목소리가 2년 전부터 작아졌습니다.
뒷뜰에 있는 커다란 고무통에 쌀을 부어드립니다.
왕겨와 쌀겨를 밭 아래까지 가져다 드립니다.

모든 일을 끝냈습니다.
도정료를 돈으로 계산하는데 돈이 남습니다.

"아따 할매 돈을 더 주셔불고 고맙구만이라."
"역실로 그랬는디."
"아니 왜라우?"
"일을 요렇게 해줘붕께 고마와가꼬 글제이."
"해드리는 것도 좋은 일이제라이."
"그건 그거고 남지기 돈은 안받을라요."
"먼소리여 받아야제."
"돈 더 받을라고 해드랬간디라우."
"글먼 젖먹이 있다매 맛난거 사줘불면 되겄네이."
"흐흐흐"


기차화통 할매 덕분에 우주 맛있는 것 사줘야겠습니다.
해가 다르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느껴지는 할머니입니다.
내년에도 할머니를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농사일 가운데 맺어진 끈끈한 정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1/25 21:25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9 일곱 - 옥림마을

오후 늦게 옥림마을에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제법 많은 양입니다.
일흔 여섯의 할아버지와 일흔 넷의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쌀집아저씨는 방아찧은 쌀을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락을 붓고 할머니는 왕겨를 담습니다.
힘든 일인데 쉼없이 일을 합니다.
방아를 다 찧고 집으로 갔습니다.

오르막길 길이라서 트럭을 후진했는데 짐이 무거워 혼이 났습니다.
결국 쌀겨를 내리고 쌀만 싣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 애마도 덕분에 땀 좀 뺐을 겁니다.
도착해서 창고에 쌀을 내렸습니다.
쌀집아저씨와 할아버지가 내리고 할머니는 트럭위에 올라 쌀을 잡아당겨줍니다.

"할머니 왕겨 담는 솜씨를 봉께 일이 상당허시구만이라."
"나가 일하는 것이 남자같다고 혔다요 허허허."
"그렇구만이라이."
"헉헉헉 아이고 힘들구마이."
"천천히 허시씨요이."
"아따 그래도 일은 허게 만들어 드래야제라이."


쌀을 모두 내리고 차를 정리합니다.
할머니는 배를 깎아서 주십니다.

"맛나구만이라."
"고생 많았구만이라이."
"힘드시죠이?"
"죽을 정을 쳤구만이라."
"긍께요이."
"자식들 줄라고 허시지라?"
"글제라 근디 자석들은 요렇게 일허는지 몰르겄제라."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여운으로 남습니다.

2009년 정미소풍경은 죽을 경을 치고 일하는 늙으신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10/31 20:52 | 트랙백 | 덧글(0)

봄방아 찧기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니 방아를 조금씩 찧기 시작합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하고 남겨 두었던 나락을 찧는 것이죠.

아침 일찍 순곡 마을로 가서 벼를 싣고 왔습니다.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 막내딸이 방아를 찧으러 왔습니다.
방아를 처음 찧어본다고 하더군요.
봄방아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쌀 80kg 10가마 정도를 찧었습니다.

방아를 거의 찧어갈 무렵 동네에서 리어카로 나락 몇 포대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방아를 찧어 놓고 순곡에 쌀을 가져다 드리고 왔습니다.

다시 돌아와 이번에는 동네 할머니 댁으로 차를 댔습니다.
길가에 있는 집인데 대문이 좁아 겨우 차가 들어가는 집입니다.
20 포대 넘게 많은 벼를 실었습니다.
방아를 찧으니 쌀 80kg  9가마 정도가 나왔습니다.
쌀을 실어다 드리고 쌀겨와 왕겨를 담았습니다.

쌀겨는 밭에 내서 고추밭 밑거름으로 쓸 생각입니다.
지난 번에 퇴비를 냈던 밭에 추가로 넣어야겠습니다.
방아를 모두 찧고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04/06 20:24 | 트랙백 | 덧글(0)

정나누기 후기

2009년 새해를 맞이해서 첫 번째 정나누기를 하고 왔습니다. 
후원자님의 후원물품을 받아 아침 9시가 넘어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 가구에 들렀습니다.
할머니께서 알아보시고 반가워 합니다.
쌀과 라면을 내려놓고 나왔습니다.
나오는 뒤로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고 인사를 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잠깐 밖에 가셔서 보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가구로 갔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좀 있어 어머니와 한 시간 넘게 이런 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오전에 쉬는 날이라서 좀 더 여유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이제 대학생이 됩니다.
학과 선택을 잘 해서 착실히 공부하고 졸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친척분 도움을 받아 운전면허 연습을 하고 있답니다.
작은 아들은 독감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네요.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고 공부도 아주 잘하는 학생입니다.
어머니도 일을 하시느라 좀 무리를 했는지 지난 달 중순에 서울에 가서 하루동안 치료를 받고 오셨다고 합니다.
몸은 좋지 않은데 일을 무리하게 하시니 몸이 아픈 것 같습니다.

오늘은 쌀집아저씨가 어머니께 말씀 드릴 것이 있어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두 가지 말씀을 드렸고 생각해 보시라고 했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밖이 환해짐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도 저도 서로 희망을 가지고 나온 느낌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12월 정기 후원금을 어제야 보냈습니다.
보통은 월초에 보내는데 집 고치는 문제로 정신이 다른 데 있었나 봅니다.
다른 달보다 좀 더 많은 후원금을 보내드렸답니다. 
그리고 연말정산용 기부금 영수증을 위해 사회복지관으로 입금을 했습니다.

올해 첫 정나누기를 마쳤습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만큼 정나누기도 더욱 발전해서 우리가 좀 더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9/01/08 21:39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다산마을 <9>

오전에 다산 마을에서 방아를 찧으러 왔습니다.
칠십 여섯 되신 할머니와 딸이 왔습니다.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했고 농사일로 몸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함께 온 딸은 옷이 화려했고 아주 세련된 모습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쌀겨를 담고 딸은 나락을 부었습니다.

정미소에 일손이 부족해 직접 일을 했습니다.
방아를 찧어 집으로 갔습니다.
골목길이 좁아 애마를 후진으로 들이댔지만 중간에서 멈췄습니다.
쌀을 어깨에 메고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창고에 넣어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쌀을 내리는 트럭에 기대고 있습니다.

"아따 할매 쩌리 좀 가제 계속 발에 치잉만요"
"아이고 미안허요 허리가 아퍼 짚고 있을라고 그랬는디"
"그먼 저쪽에 계셔야제 가는 곳마다 따라 댕기먼 안되제라"

"연세가 많은디 농사 그만 허셔야겄구만이라"
"안직은 갠찮은디"
"우리 막둥이 줘야씅께 해야쓴단 말이요"
"엄마는 그렇게 도와줘봐야 필요가 없어요"
"고런 말이 어디 있다냐"

"따님은 어디 산답니까?"
"미국 캘리포니아요"
"와따 먼디서 오셨구만이라"
"젊은 분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뭐 힘은 좀 들지만 좋습니다"

쌀을 모두 내리고 나서는데 딸이 음료수라도 사먹으라고 돈을 내밉니다.
이런 경험은 아주 드물죠.
극구 사양했지만 트럭에 넣어주더군요.
'이게 미국식인가?'

2008년 정미소풍경 아홉번째 이야기는 열 손가락 중 가장 아픈 한 손가락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28 22:03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마산마을 <6>

오늘 오전에 마산마을로 갔습니다.
중학교 동창네 집인데 어제 바빠서 방아를 찧어주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10km 이상 떨어져 있는 먼 곳에 있는 마을이라 그리 되었습니다.

집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맞아주셨습니다.
"방애실에서 왔소 쩌그 윗쪽이다요"
"할머니가 아까 전화 받으셨당가요?"
"그랬는디"
"연세가 어찌 되셨능가요?"
"여든 둘인디"
"왔다 재홍이 할머니 아조 총허시구만이라"

"어머니 저 왔습니다"
"아따 빨리 와붓네"
"근디 나가 허리가 안좋아 거들어 주지도 못허고 힘들어서 어쩔까이"
"어쩌겄습니까이 그냥 싸목 싸목 헐랍니다"

50개 정도 되는 매상 포대에 담긴 벼를 애마에 실었습니다.
어깨에 메고 등에 메고 그냥 손으로 들고...
그렇게 20분 정도 열심히 실어 방아를 찧으러 갔습니다.

"근디 허리가 많이 아픙가요?"
"무릎이 안좋아 수술을 했는디 인자는 허리까정 아퍼붕만"
"어찌까이 어쨌거나 안아퍼야 쓸 것인디"
"긍께 자식들은 농사를 줄이라는디 고거이 쉽지도 않고"
"물팍도 허리도 않좋음시롱 일을 너무 많이 허신갑구만요"

한 시간 정도 방아를 찧어 가져다 드렸습니다.
"혼자 오셔서 고생 많으셨구만이라"
"어지께 왔으면 좋았을 것을 고생 많앴구만"
"그나저나 막둥이가 장개를 못가서 걱정이네"
"몇 살인디요?"
"서른 넘어부렀당께"
"요즘은 다 늦게 강께 괜찮헌디"
"그래도 난 꺽정시러운디"
"너무 걱정 안해도 되겄구만이라"
"가실일 허느라 고생이 많구만 아프지 말어야제"
"예 알겄구만이라 어머니도 건강허시씨요이"

중학교 동창 친구는 혼자서 방아를 찧는 어머니가 걱정되었는지 광주에서 와서 잠깐 들여다 보고 갔습니다.
말수는 적지만 인정있고 참 좋은 친구입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 여섯 번째 이야기는 자나깨나 자식걱정인 우리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20 21:18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샘골마을 <5>

오전 아홉시가 넘어 샘골마을로 들어갔습니다.
가운데 골목길을 구불구불 들어가 가장 윗 집입니다.
애마를 후진으로 해서 토방에 놓여 있는 나락을 실었습니다.

"건강하신게라?"
"벨라 건강허지가 못허시"
"어디가 안 좋으시간디요?"
"허리가 아퍼 수술을 했는디 계속 아파부네"
"척추 수술을 하셨당가요?"
"그려 1년이나 지났는디 이 모냥잉만"
"긍께요이 고 수술이 어려운 모양이더만요"

"인자 그러믄 농사를 그만 지셔야 쓰것는디요"
"그래도 살살 해봐야제 어찌 그러것는가"
"몸도 이렇게 불편하신디 무리허면 더 아파붑니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거듭니다.
"할아버지가 말을 안 들응께 문제제"
"아따 할아버지 할머니나 자식들 말을 잘 들어야제라"
"좀 더 머라고 해부소 정신 채리게"
"시골 부모님 아퍼불먼 자식들은 어떻게 하지도 못허고 속상해붑니다"
"......."

할아버지는 조용히 듣기만 하고 웃고 계셨습니다.
방아를 찧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왕겨와 쌀겨를 내리고 쌀을 내렸습니다.

"미안시러운디 쌀을 좀 창고에 쟁여주소"
"예 덜 바쁭께 그리 해드리겄습니다"
"고맙네이"

할아버지는 쌀집아저씨가 쌀을 내리는 내내 마루에 누워 계셨습니다.
방아를 찧으면서 왕겨를 담느라 무리를 하신 모양입니다.
나르는 쌀의 무게보다 누워있는 할아버지가 더욱 무거워 보였습니다.

2008년 정미소풍경 다섯 번째 이야기는 아픈 몸과 일이 하나가 되어버린 우리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17 22:19 | 트랙백 | 덧글(0)

정미소풍경 2008 오도미마을 <2>

저녁 여섯 시가 넘으니 세상이 어두컴컴합니다.
오도미 마을로 방아를 찧어 싣고 갔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좁아 리어카에 쌀을 실어주고 짐칸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저만치서 할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밀며 약간 오르막길을 힘겹게 걸어오셨습니다.

"누구다요?"
"정미소집 아들인디요이"
"잘 몰것는디 한나도 안 타겠구만"
"아따 할머니 잘 보시씨요이"
"어디... 인자 봉께 좀 타건것 같기도헝만"

"우리 사우도 방아 찧어야된디"
"동물병원 말입니까?"
"잘 앙만"
"지난 번에 보니 논에 피가 많아 뽑으라고 했는디요"
"바쁭께 긍가꾸만"

"연세가 어찌 되셨당가요?"
"여든허고 여섯이제"
"아따 할머니 총허시구만이라"
"헤헤헤"

"할머니가 올해 연세가 어찌됐당가?"
"할머니 돌아가신지가 몇 년 되얐든디요"
"나두 안디 연세가 궁금해가꼬"
"올해 살아 계시믄 아흔 아홉이구만요"
"글쿠만 할머니 참 좋았는디..."
"나 인자 가볼라네"
"예 건강허시씨요"

2008년 두번째 정미소 풍경은 이웃 할머니를 통해 본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by 쌀집아저씨 | 2008/10/11 23:19 | 트랙백 | 덧글(0)

정나누기 후기



오늘 아침에 정나누기를 하고 왔습니다.
지난 달에는 후원하는 두 가구 모두 쌀이 남아있어 한 달을 건너뛰었습니다.
오늘은 화순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서둘러서 정나누기를 했습니다.
이번 정나누기에는 쌀과 라면외에 새로운 후원금도 있었답니다.

먼저 장애인 가구에 들렀습니다.
할머니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계셨고, 오랜만에 손자도 봤습니다.
손자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얼굴을 봤습니다.
전체적으로 살이 많이 빠져 보였습니다.
정나누기하러 갔을 때마다 밤에 컴퓨터를 하고 아침에 잠을 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러한 생활의 여파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손자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하루 종일 방안에만 있으면 몸이 안좋아지니 산책이라도 열심히 해야한다."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지만 별로 차도가 없다고 힘들어하셨습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세 분을 뒤로하고 다음 학생 가구로 갔습니다.

어머니와 작은 아들이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큰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 학교에 가고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좋지 않아 보였고, 아들은 그새 많이 자랐습니다.
아직 형보다 크지 않지만 잘 자라서 조만간 앞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머니는 지난 달에 일을 늘렸다가 몸이 안좋아져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혈전이 많이 생겨 며칠을 집에서 앓다가 서울 병원에 가서 투석을 하고 겨우 진정이 되어 지금은 아르바이트만 조금씩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안 아프시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야 두 아이가 걱정없이 학교 잘 다니고 생활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도 가장 잘 아실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니 돈이 더 필요했고 무리를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이번 정나누기부터 함께 하신 후원자가 있습니다.
멀리 경상도에 사시는 분입니다.
학생 가구에 매달 후원금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아파 일을 잘 못하는 현실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후원금을 드리자 어머니는 너무 미안하다고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새로운 후원자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정나누기가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후원자님이 한 분 더 늘었습니다.
이제 세 사람이 함께 후원을 하는 셈입니다.
역시 사람사는 세상은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곳이라는 생각입니다.
무더위에 모두 모두 건강하세요.

by 쌀집아저씨 | 2008/07/12 17:18 | 농부의 삶 | 트랙백 | 덧글(0)

꼬부랑 할매의 밭

화순읍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다산 마을이 있습니다.
쌀집아저씨의 정미소 풍경에 나오는 다산 마을입니다.
다산 마을하면 작년 가을에 아파서 입원한 꼬부랑 할매가 생각납니다.

지난 초봄에 꼬부랑 할매를 다시 봤습니다.
저 멀리 가시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다시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넓은 땅만 보고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일부러 그 밭옆에 차를 대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상당히 넓은 냇가 바로 옆에 있는 밭입니다.
아마 비가 많이 내리면 물에 휩쓸리기도 하겠죠.
밭이 아니었던 곳을 밭으로 일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밭두렁에는 꼬부랑 할매의 손길이 닿은 돌들이 쌓여 있더군요.


꼬부랑 할매.
어쩌등간에 농사 잘 짓고 건강해야제라.

by 쌀집아저씨 | 2008/06/10 17:58 | 농부의 삶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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